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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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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광주지방의 청년·학생운동과 지역사회 다운
1920년대 광주지방의 청년·학생운동과 지역사회
이 글은 ‘광주학생독립운동 7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움’의 기획 가운데 하나로 준비되었다. 필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발 배경...
이 글은 ‘광주학생독립운동 7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움’의 기획 가운데 하나로 준비되었다. 필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발발 배경을 운동사 측면에서 해명하는 일이었다. 특히 1920년대 광주지방의 청년·학생운동과 1929~1930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상호 연관성을 구명할 것을 요구받았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중심 세력은 학생이지만 청년운동 세력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전개과정에 깊숙히 개입했기 때문이다.
1920년대 광주지방의 청년·학생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상호관계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문제가 천착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1920년대 중후반 청년운동 지도부의 형성과정이다. 이 문제는 현재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이념과 지향을 해명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청년운동 세력이 학생운동에 개입하게 된 연원, 두 운동의 상호관계를 해명하는 일이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1920년대 중반부터 청년운동 세력은 학생층을 조직하고자 노력했으며, 학생비밀결사인 성진회와 독서회의 결성과 활동과정에 개입하였다. 김성보, 「광주학생운동과 사회주의 청년학생조직」 『역사비평』 1989년 봄호 ; 김동춘, 「1920년대 학생운동과 맑스주의」 『역사비평』 1989년 가을호 ; 박찬승, 「광주항일학생운동의 정치사상적 배경 - 192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의 양상과 학생운동론」 『전남사회운동사연구』(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지음), 한울아카데미, 1992
그러나 실제 성진회와 독서회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가 이런 연구 결과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참가자들의 의문을 간단히 말하자면, 직접적으로 누구의 지도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광주학생운동 참가자들 사이의 엇갈리는 증언에 대해서는 鄭鎭伯 對談, 「獨立運動家 李基弘 : 어둠속에서 빛나는 삶은」 『금호문화』 1984년 7·8월호 ; 李在儀, 「논란 활발한 배후세력의 성격」 『藝鄕』 1989년 11월호 참조
문제의 소재는 성진회와 독서회가 비밀결사였다는 데 있다. 조직과 활동을 철저히 보위해야 하는 비밀결사의 속성상, 조직원이라 할지라도 조직의 비밀을 극히 일부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공개 영역에서 은밀하게 진행된 활동만으로는 학생운동과 청년운동의 상호관계를 온전히 복원하기 어렵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21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1920년대 광주지방의 청년·학생운동과 지역사회
파일이름 : 1920년대 광주지방의 청년·학생운동과 지역사회.hwp
키워드 : 1920년대,광주지방의,청년·학생운동과,지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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