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부모님와현재나의대화 다운 FD
- fenda634d
- 2020년 12월 7일
- 3분 분량
과거부모님와현재나의대화 다운
과거부모님와현재나의대화
과거부모님와현재나의대화
REPORT
김승민
과거(부모님)와 현재(나)의 대화
‘과거와 현재의 대화’란 주제를 바탕으로 글을 쓰려니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떤 형식으로 풀어가야 할지 참 막막했다. 하지만 난 틀에 얽매이지 않고 부모님의 살아온 생애를 통해 그 안에서 부모님이 느끼셨을 감정이나 생각 등이 나와 내 오빠의 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하기로 했다.
나의 아버지는 김해 김 씨 집안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셨다.
장남이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 있게 행동해서 삼촌들과 고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그런 장남의 모습이 지금의 나의 오빠에게서도 가끔 보인다. 또 아빠는 좀 과묵하시다가도 가끔 던지는 말에 굉장히 유머가 느껴지는데, 오빠 역시 그럴때가 많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이구나 하고 가끔 실감한다.
아버지는 어렸을 적 깊은 상처를 안으셔야 했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고모가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나셔서 할아버지 무덤가 옆 진달래나무 밑에 묻히셨다. 가끔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뵐 때마다 나무에 눈길이 가곤 한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학업에 대한 열의가 남다르셨다. 하지만, 장남이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장 역할까지 해야 했던 상황에서 대학까지 진학한다는 건 사치로 느끼셨다. 그래서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하시고 일찍부터 취업을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겉으론 드러내시진 않았지만 우리 남매에 대한 교육열은 가슴속 깊은 곳부터 느껴졌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책 사는 데에 쓰는 돈은 절대 아까워하시지 않고 서슴없이 주셨다. 지금 조금 컸다싶은 나이에 다시 생각해보니 아마 아버지는 우리 남매라도 맘 편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어릴 적 소망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넘어 온
것이다. 과거의 부모의 소원이 현재 자식의 생활로 이어지다니 자식과 부모의 인연은 참 묘한 듯하다.
아버지는 성인이 되어서도 순탄한 생활을 보내시진 못하셨다. 하지만 그때마다 희망을 가슴에 간직하고 견뎌내셨다고 한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 때문에 지금의 아버지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소개로 만나 연애를 하시다 결혼을 결심하고 가정을 갖게 되었다.
그런 사랑의 결실로 나와 내 오빠가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나와 우리 오빠에게 매를 들 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일에 바쁘시고 더군다나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지는 장남으로서 동생들 앞에서 어리광 보이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늘 강한 척하셔야 했고 부모님의 사랑이 그리워도 참고 넘기셨다. 자신의 그러한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인지, 언제나 우리 남매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신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사랑 속 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투정하는 내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나의 어머니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파주에서 전주 이 씨 1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나셨다.
어렸을 땐 전형적인 시골소녀였다고 한다. 논에서 뛰놀고 밭에서 뛰놀고 개울가에서 개구리를 잡고 그러는 것이 어머니의 하루 일과셨다.
아침 일찍 외할머니를 도와 아침을 짓고 일을 하다가 낮에는 학교를 다녀온 후, 밤에는 어김없이 동네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의 성격을 닮아서인지 나는 유난히 노는 걸 좋아한다. 가끔은 나도 도시보다는 시골이 친숙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겪으셨다.
장녀는 아니었지만 형제가 많다보니 모두가 학교에 다닐만한 처지는 되지 않았다.
어머니도도 학교를 졸업한 후 상급학교를 진학하는 건 포기하셨다. 대신 일찌감치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해 외삼촌과 막내 이모의 학비를 마련해 주셨다. 어린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작은 도전도 두려워하는 성격인데 그건 어머니랑 조금 다른 부분인 듯하다.
어머니도 역시 학업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긴 마찬가지셨다. 그래서 우리 남매가 공부하는방법에 대해 특별히 간섭은 하지 않으셨지만, 배우고자 하는 건 주저 없이 배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셨다.
어릴 적부터 키워 온 내 꿈은 첫 번째가 투어컨덕터, 흔히들 관광가이드라 부르는 직업이었고, 두 번째가 내가 사학과를 들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동기를 마련 해 준 박물관 큐레이터였다. 첫 번째나 두 번째나 뭔가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힐 필요가 있는 직업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우연히 유럽여행에 참가 할 기회가 생겨서 내가 혹시 거절당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어머니한테 허락해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선뜻 허락해 주셨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자식만큼은 자유롭게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으셨던 뜻이 마음깊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때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것은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여행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의 경험이 내 인생에 참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역사란 것이, 그리 거창한 것만도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서술한 이야기가 형식에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고 주제에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지금껏 이야기한 모든 것이 물론 나의 주관이 약간 개입되기도 했으나 대부분 있는 그대로의 우리 가족의 이야기고 그게 곧 기억이며 추억이다. 나에게 있어서 역사란 지금까지 이런 의미였다. 어느 한 사람의 기억이나 추억이 그 사람의 주관과 더불어 글로 쓰여 지고 말로 전해지면 그게 그냥 나에겐 ‘역사’란 의미이다.
아버지의 경험이, 또, 어머니의 삶이 나에게 전혀 생소하고 먼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하루하루 속에 그분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4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과거부모님와현재나의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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