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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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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의 국가이론
그람시의 국가이론 사상의 철학적 배경과 사상 종류를 분석한 리포트입니다. 그람시국가이론12
3. 혁명정당론
국제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토대, 즉‘하부구조’의 우위성은 19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일종의 편향이었다. 이에 대해, 자신의 이론적 저작과 볼셰비키 당에서의 지도력을 통하여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선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맑스주의 자체 내에서 정치투쟁의 역할을 최초로 제기했던 사람은 레닌이었다. 물론, 코르쉬, 루카치 등의 인물이 계급투쟁에서의 주관적, 문화적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토대 물신론 일색의 사회주의 운동에 이의를 제기한 적은 있었지만 그러한 사상을 혁명투쟁의 과정에 도입함으로써 사회주의 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전적으로 레닌의 몫이었던 것이다. 레닌은 기존의 지배적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투쟁을 제기했는데, 이는 집단행동을 지도할 도구를 건설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소수의 직업 혁명가들을 그 구성원으로 하는 혁명 정당론이 제기되었고 볼셰비키라는 구체적 형태로 그의 이론은 가시화 되었던 것이다. “레닌의 혁명 정당론은 권력투쟁기에 지도력 동원성과 정치적 정체성을 극대화하도록 고안되었는데, 이는 기존 지배 질서의 위기의 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조를 창출한다” 칼 보그, [다시 그람시에게로], 한울, 1991, p. 116, 117.는 그의 기본적 구상에 의해 배태된 생각이었다. 따라서 그의 혁명정당론은 -그람시의 표현에 의하면- 정치권력을 궁극적으로 장악하기 위한‘기동전’을 감행할 수단으로 그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람시의 혁명정당론은 위에 열거한 레닌의 혁명론과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을 받았다. 즉, 경제 투쟁과 관련하여 정치투쟁이 방기될 수는 없다는 그람시의 기존의 생각, 즉, 토대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 상부구조의 영역에서의 정치 이데올로기 투쟁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기왕의 생각에 대한 재확인은 물론이고, 러시아 혁명을 통하여 그람시는 그러한 정치투쟁을 이끌어갈 핵심 부위로서의 혁명정당에 대한 고민에 몰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람시는 레닌의 경제주의 비판과 정치 투쟁이 혁명 투쟁의 주요한 요인이라는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한편 이를 기초로 하여 더욱 확장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혁명 정당론을 연구하였다. 레닌의 혁명론에 대한 고찰과 공장 평의회 활동을 통하여 그람시는 자신만의 독특한 혁명 정당론을 개진하게 되었던 것이다.
레닌과 정치 투쟁 영역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면서도, 그람시는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비롯된 이론의 단초들을 정밀화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바로 그것이 그람시의 혁명 정당론이 레닌의 이론과 구별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람시는 정치투쟁을 주도해 나갈 단위인 혁명 정당의 역할에 대해서는 그것을 수용하면서도, “정치가 리바이어던적 성격을 띠는 것을 방지하는 이중적 시각, 혹은 총체성에 대한 주의” 칼 보그, [다시 그람시에게로], 한울, 1991, p. 118.를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람시의 혁명 정당에 대한 관심은 공장 평의회 운동이 좌절되고 이탈리아 사회당과의 분리가 가속되던 1920년경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레닌의 혁명정당론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투쟁 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개량주의를 단절시키는 도구로서도 그람시에게 유의미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그람시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을 주도하게 된다. ‘의회를 통한’ 사회주의적 길이라는 종래의 사회주의 운동 내적 환상을 거부하고, 그는 볼셰비키 당 이론을 받아들여 이탈리아 사회당과 개량적 노동조합운동을 공격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시도가 과도한 당의 과도한 중앙집권적 성격에 대한 경각심을 약화시켰던 적은 한번도 없다. 그는 공장 평의회 활동 기간의 긍정적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의식에 대한 초기의 이론적 관심을 폐기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그는 지도부가 노동자 농민 계급의 일상생활에 근거해 있으면서 부르주아 체제의 모든 영역에서 가동될 준비가 되어있는 당 이론을 지향했던 것이다.
그의 당 이론은 함께 공산당 내에서 활동하던 보르디가와의 논쟁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나는데, 당시 보르디가는 협애한 개념의 권위적 정당론을 옹호하며, 즉각적 국가 권력 투쟁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그람시는 보르디가 당 이론의 소아적 성격을 지적하며 혁명 정당이 경제적, 정치적, 문화-이데올로기적 투쟁을 담보하는 총체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이를 통해 그람시는 자본주의 사회의 총체적 변혁을 도모하는 한편, 투쟁의 과정에서부터 미래 사회를 예비하고자 했던 것이다. [옥중수고]에 나타난 그람시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보르디가와의 투쟁 과정에서 정련한 이론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는 하나의 구체적 개인에게 신화적으로 육화될 수 있는 역사, 정치적 행위는, 단지 직접적이고 절박하여 촌음을 다투는 성격의 것에만 국한된다. 정열과 열광주의를 갑자기 백열케 하고, 대장의 ‘카리스마적’ 성격을 훼손시키는 일체의 비판적 감각과 예리한 회의를 압살시켜 버리는 당면한 거대한 위기만이 그러한 시급성을 요한다. 그러나 그러한 즉흥적인 행위는 그 성격상 장기적이고 유기적인 성격을 지닐 수 없다. 그러한 행위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복고와 재정비에나 적합한 것이지 새로운 국가, 혹은 새로운 국민적, 사회적 구조를 기초하는 데에는 부적절하다.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1-정치편], 거름출판사, 1986, pp. 120, 121.
혁명정당과 관련되어 있는 그람시의 주장은 대개 마키아벨리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나타난다. 그는 맑스주의에 결여되어 있는 것이 마키아벨리적 국가통치이론과 통치술이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대중의식을 활성화하고 그것을 조직할 기구의 필요성은 새로운 사회를 조망하는 사회주의 운동에 절대적인 요소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타난 군주는 “행동하고 행동을 추진해나가는 당의 강령 같은 유형의 사람이다”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군주도 결코 자의적 권위를 부여하는 엘리트로 간주될 수는 없으며, 오직 “국민적-민중적 집단의지를 각성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1-정치편], 거름출판사, 1986, pp
[문서정보]
문서분량 : 12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그람시의 국가이론
파일이름 : 그람시의 국가이론.hwp
키워드 : 그람시의,국가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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